지구가 멈춘날
크리스마스 이브의 응급실 풍경은 의외로 조용했다. 외곽지역이라 그런지 텅빈 응급실 침대에는 안타깝게도 뺑소니 사고를 당한,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은 시각 장애인과 빙판에 미끄러져서 다리를 다친 사람 외에는 정적 마져 감도는 응급실의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유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들어가는 순간 응급실의 정적은 깨지고 말았다. 유진이의 애끓는 울음에 인턴으로 보이는 젋은 의사는 어찌할 줄 모르고 그 모습에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는 분노 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서인지 나타난 레지던트로 보이는 의사는 유진이의 상처를 보고 인턴에게 몇가지 처치를 내린다. 부모의 가슴을 짖이기는 소리 중에 어찌 그 자식의 울음 만한 것이 있으랴. 그 조그만한 것이 눈물을 쉴새없이 떨구며 자지러지듯이 우는 모습에 자책감과 후회를 넘어선 공포가 느껴졌다. 

사건은 그렇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나들이를 마치고 그날의 여운을 즐기며 나른함에 몸을 맡기고 있을쯤, 아내에게 커피를 주문했고 날이 날인지라 군소리 없이 아내가 가져다준 뜨거운 커피. 언제나 그렇듯이 탁자 위에 놓인 하얀 커피잔은 유진이에게 호기심 그자체였을 것이다. 예전부터 뜨거운 것에 대한 위험을 교육하고자 일부러 유진이 손에 뜨거운 컵을 가져다 대며 '아뜨거'하고 말해주길 여러차례, 평소에 유진이도 '아뜨, 아뜨'하며 컵에 손을 쉽게 가져가지 못했다. 그런 방심과 교육에 성공했다는 오만이 부른 화일까. 어느샌가 달려와서 뜨거운 커피잔을 온 몸에 뒤집어쓴 유진이. 그 날, 그 순간, 유진이의 비명은 우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현명한 아내는 재빨리 유진이를 들쳐업고 싱크대에 차가운 물을 뿌렸다. 뜨거움에 의한 고통인지, 아니면 물이 너무 차가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놀라서인지, 차마 눈또고 보기힘든 아이의 비명에 머리 속은 백지장이 되었다. 나는 병원갈 준비를 하라는 아내의 호통에 바지를 꺼꾸로 입고 분유통을 챙기고 그저 힘없는 못난 남편에 못난 아빠가 되어버렸다. 차거운 물에 흠뻑 젖은 유진이를 담요에 감고 아내가 안아주고나서야 유진이의 울음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화상으로 인한 고통으로 유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그저 운전 밖에 할줄 모르는 못난 아빠는 병원으로 가는 길을 서두를 뿐이었다.

아내는 유진이를 앞을 보게 안고 나는 유진이의 두 다리를 잡고 있었다. 인턴으로 보이는 의사는 무언지 모를 투명한 액체를 유진이의 허벅지에 계속 쏟아붓고 있었다. 벌겋게 익어 껍질이 벗겨진 유진이의 허벅지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저 조그만 것이 언제 이런 고통을 느껴봤을까? 상상하기 힘든 그런 고통을 나의 피가, 나의 분신이, 나의 아들이 격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매정하게 발목이 부러져라 잡고 있을 뿐이었다. 유진이의 발버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2도 화상입니다. 흉이 남을 수도 있겠네요" 억장이 무너지는 말이다. 응급처치 후 성형외과 외래 예약을 하고 집으로 가는 내내 의사의 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 아내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지쳐서 잠이든 유진이의 숨소리만 가슴 아프게 들릴 뿐이다. 아내는 유진이 옷을 갈아 입히고 자리에 눕히고 있는 동안 나는 커피로 얼룩 유진이 잠옷을 정리한다. 도대체 내가 무슨일을 저지른걸까. 바닥에 흘려진 커피를 닥아내고 이리저리 어질러진 방도 치워본다. 집안에 적막함이 감돈다. 녀석의 재롱에 웃고 떠들던 소리가 멀다. 집안의 무거운 공기가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인터넷으로 아이의 화상에 대해 검색해 본다. 의외로 이런 사고가 많은지 여러가지 글들이 올라와 있다. 화상에 뭐가 좋더라, 어느 병원이 잘 본다더라. 단순한 잡담과 같은 글이라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 정리를 마치고 내방에 들어온 아내를 보고 말없이 껴안았다. 과연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나? 그저 지구가 멈춘듯한 느낌.

밤을 새다시피하고 아침일찍 나선 출근 길. 발이 떨어지지 않지만 오늘따라 아침부터 미팅이다. 출근 직전 다행이랄지 유진이는 잘 자고 있다. 아침 10시에 예약한 병원, 회사 업무가 손에 잡히지도 않고 10시가 가까워 올 수록 전화기를 손에 뗄 수 없었다. 회사 동료에게 간밤에 일을 설명하니 동료가 뭐라고 나무란다. 뭐라고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저 죄인인 것을, 10시 20분 쯤, 그 기나긴 시간은 지나고 드디어 병원에 갔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2도 표재성 화상이래, 2주간 잘 다니면 흉 없이 낮는데" 짐짓 흥분한 듯한 아내의 전화에 갑자기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열일 제치고 퇴근 하자마자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유진이가 웃으면서 뛰어온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모 마음이야 하나 같은 것. 가족을 가져서 행복하다는 것. 세상 그 어떤 가치 위에 남는 것은 가족이랄지. 남은 생애 이 보다 더한 순간들이 우리 가족에게 닥치겠지만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본다.



 
by TRON | 2008/12/29 13:28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GAUDI.egloos.com/tb/218566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